‘남미새’ 현상, 여성 빌런의 새로운 얼굴인가

최근 유튜브에서 큰 화제를 모은 영상 하나가 있다. 개그우먼 강유미가 올린 ‘남미새 빙의된 내 친구’라는 제목의 콘텐츠다. 이 영상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회수 100만을 넘기며 ‘남미새’라는 키워드를 대중의 입에 오르게 했다. ‘남미새’는 ‘남자에 미친 새X’의 줄임말로, 남성 중심의 사고와 행동에 몰두한 여성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이 단어는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서로를 지칭하며 사용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과거에도 ‘여우’, ‘끼쟁이’처럼 여성을 향한 경멸적 표현은 있었지만, 특정한 성향이나 행동에만 한정됐다. 반면 남미새는 일상과 관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태도나 가치관까지 포괄한다.

‘남미새’의 주요 특징

강유미의 영상 속 인물처럼 남미새는 외출 전 몇 시간씩 옷과 화장에 매달리며, 타인을 의식한 ‘독기룩’을 입고 등장한다. 대화 주제는 항상 남자친구 이야기로 귀결되며,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이 없는 남사친과도 유사 연애를 즐긴다. 혼자 있는 시간은 견디지 못하고, 남자가 있어야만 즐겁다며 술자리를 고집하는 모습도 전형적인 이미지로 묘사된다.

이런 유형에 대한 온라인 설명을 보면 공통된 인식이 있다. 자존감이 낮고,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기보다는 남성의 능력에 의존하려 하며, 취미가 부족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힘들고, 외모에 대한 과도한 꾸밈을 강박처럼 반복한다. 나아가 남자 중심의 관계를 우선시하다 보니 친구들과의 유대는 느슨해지고, 필요할 때만 감정 쓰레기통처럼 친구를 찾는다는 비판도 있다.

왜 지금 ‘남미새’가 주목받는가?

최근 들어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이나 친구가 ‘남미새’인지 아닌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우스갯소리로 공유하는 글이 많아졌다. 이는 단순한 유행어 이상의 사회적 신호로 읽힌다. 특히 연애나 결혼, 출산 이후 여성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에 거리감을 느껴 구독을 취소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주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던 여성들이 어느새 남편과 아이 이야기로 중심이 바뀌면서 실망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비연애·비혼을 주장하던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하면서 느끼는 상실감과 배신감 속에서도 ‘남미새’라는 단어가 회자된다. 이는 단순한 친분 이상의 관계, 즉 여성 시민으로서의 기대와 연대감이 깨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관계 재편과 청년 여성의 불안정한 위치

이러한 흐름은 ‘페미니즘 리부트’ 세대를 겪은 청년 여성들 사이에서 더욱 뚜렷하다. 특히 결혼 적령기라는 시간 압박 속에서 여성들 간의 관계는 남성과의 결합 여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한때 함께 비혼과 비연애를 외치던 친구가 어느 날 남자친구를 사귀고, 그 관계에만 집중하게 되면 기존의 여성 간 연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비연애·비혼 여성들의 위치 또한 애매하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되면서도, 동시에 출산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자원’으로만 취급된다. 많은 지자체에서 결혼 장려와 출산 지원 정책은 존재하지만, 연애와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삶을 위한 제도적 고려는 부족하다. 결국 여성의 자아실현 방식이 제한된 현실 속에서, 연애 관계는 가장 쉬운 인정과 소속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구조적 문제로 읽어야 할 때

‘남미새’라는 단어가 조롱과 혐오를 담고 있다면, 그 배경에는 여성들이 처한 사회 구조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여성 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왜 그런 선택이 쉽게 이해되고 또 반복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OECD 29개국 중 한국은 12년 연속 여성에게 가장 일하기 힘든 나라로 꼽혔다. 자아실현의 대안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애는 현실적인 탈출구가 될 수 있다.

강유미 영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퇴마된 남미새가 결국 또 다른 인물에게 옮겨간다는 설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모두,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어느 순간 가부장적 구조에 연루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남미새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보다 먼저, 우리는 왜 멀어졌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여미새’가 남성 인권을 해친다는 말은 없는데, ‘남미새’는 왜 여성 인권을 후퇴시킨다고 느껴지는가? 이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여성이 자율적 삶을 꾸려가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